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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 News Room

[21세기 서원을 찾아서] 영남대 중국古文 윤독회 N

No.1962504
  • 작성자 통합관리자
  • 등록일 : 2010.04.19 00:00
  • 조회수 : 15060
책 들고 교정內 한옥으로… 사랑방 둘러앉아 古文 번역

[조선일보]2010-4-19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4/18/2010041801396.html


 "中역사 겪어낸 문인들 전기 그 자체로 문학·역사 寶庫 차례차례 해석해 소개할것""긴긴 해에 강산 화려하고 / 봄바람에 꽃 내음 진동하네 / 개흙 풀리고 제비 날아들 제 / 따뜻한 모래밭에 원앙이 조는구나."(두보의 '절구(絶句)' 중에서)

 정갈하게 다듬어진 기와지붕 위로 만개한 벚꽃이 봄바람에 흩날렸다. 꽃샘추위가 살짝 스며든 지난 13일 오후 경북 경산시 영남대학교
캠퍼스 안 '의인정사(宜仁精舍)'는 영남대 중국문학연구실 고문(古文) 윤독회 회원들이 중국 전통시를 읊으며 내는 웃음소리로 생기가 넘쳤다. 퇴계의 후손인 이중철이 1887년 경북 안동군 도산면에 지은 56칸짜리 양반 가옥인 의인정사는 1976년 안동댐이 만들어지면서 안채·사랑채·아래채가 고스란히 이곳으로 옮겨왔다.

벚꽃이 만개한 지난 13일 오후 영남대 캠퍼스 안 의인정사에서
이장우 명예교수(오른쪽)가 영남대 중국문학연구실 고문 윤독회 회원들과 함께 가진 야외 세미나에서 중국전통시를 읽고 있다.
 영남대 중국언어문화학부 교수들과 대학원생들이 주축을 이루는 중국고문 윤독회 회원들은 날씨가 좋을 때면 책을 한 보따리씩 짊어지고 연구실에서 5분 거리인 이곳을 찾는다. 사랑방에 앉아 중국시를 낭독하고 중국고전을 번역하면서 20년 넘는 세월을 보냈다. 초대 회장이자 지금은 고문을 맡고 있는 이장우 영남대 명예교수(중국언어문화학부)를 비롯해 현 회장인 박운석 영남대 교수(중국언어문화학부), 남민수 영남대 민족문화연구소 연구원, 중문학 박사인 전일주 대구 능인고 교사, 장세후 경북대 퇴계학연구소 연구원, 신귀현 영남대 명예교수(철학), 김정화 영남대 교수(국문학) 등과 영남대 중국언어문화학부 석·박사반 학생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이장우 교수는 "1990년 모임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대학원생들의 고문(古文) 독해 능력을 키우는 게 1차 목표였지만 만남을 거듭할수록 공통된 관심 주제를 정해 함께 공부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당대문인열전(唐代文人列傳)' '위진남북조문인열전(魏晉南北朝文人列傳)' '논어역주(論語譯註)' '고문진보(古文眞寶)' '중국불교문화(中國佛敎文化)' '맹자역주(孟子譯註)' 등 30권이 넘는 책을 함께 윤독하고, 번역·출간했다. 이 중 '고문진보' 번역서는 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됐다.

 지금은 중국고문 중에서 빼어난 작품 222편을 뽑아 편찬한 '고문관지(古文觀止)'를 5년째 해석하고 있다. 윤독 발표자는 매주 목요일에 한 작품을 맡아서 작가를 소개하고 우리말 번역을 덧붙이며 원문에 각주를 단다. 다른 회원들은 번역의 오류와 문제점을 지적하고, 작품에 대한 의견도 기탄없이 내놓는다. 발표자가 잘못된 것을 고쳐 다시 제출하면 이를 감수해 최종 보관한다. 윤독회는 긴장이 감돈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모임 내내 눈물·콧물을 쏙 뺄 각오를 해야 한다. 박운석 교수는 "1년만 더 하면 1차 번역이 끝난다"며 "500쪽짜리 번역서 3권으로 출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이 모임은 1994년 중국어문학 번역 전문지인 '중국어문학역총(中國語文學譯叢)'을 창간하여 지난해까지 총 31집을 펴냈다. 모임마다 중국의 문학이론을 우리말로 옮겨 어느 정도 분량이 되면 역총에 싣는다.

 

 이장우 교수는 "학자들이 논문만 쓰는데 고전 번역이 밑받침돼야 훌륭한 논문도 나올 수 있는 것"이라며 "연구하는 사람들이 텍스트 자체를 꼭꼭 씹어 자기 것으로 만들고 이를 자양분 삼아 핵심을 찌르고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성과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박운석 교수는 "중국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문인들의 전기는 그 자체만으로 문학과 역사를 동시에 익힐 수 있는 보고(寶庫)인데 정작 한국에는 거의 소개돼 있지 않아 안타깝다"면서 "윤독회는 앞으로 송·원·명·청 시대의 문인 열전까지 차례차례 번역해 더 많은 사람이 중국을 배우고 알아가는 데 보탬이 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